서양 철학

소크라테스

ARTificial Intelly 2018. 10. 27.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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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피타고라스 학파

6. 헤라클레이토스 - 실존주의 철학의 아버지

7. 파르메니데스 - 엘레아 학파의 창시자

8. 제논 파르메니데스의 제자

9. 엠페도클레스 & 아낙사고라스

10. 소피스트 - 회의론자들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의 주장을 논박하고 나섰다. 그는 문명이 와해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으며, 진리에 대한 탐구를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소크라테스를 가리켜 서구 문명의 구원자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소크라테스는 덕이란 곧 올바른 지식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정도로 양자가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올바른 생각과 올바른 행위를 구별할 수는 있지만, 나눌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진리를 발견하는 방법으로 대화를 사용했다. 그는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에 나오는 주인공이었다. 대화 속에 나오는 소크라테스가 실제 인물인지, 아니면 플라톤이 자신의 사상을 전달하기 위해 만든 가상의 인물인지에 대해 학자들간에 설전이 오간다. 어떤 경우든지, 이른바 소크라테스가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을 창안한 장본인이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이란 자극적인 질문을 던져 지식을 얻는 숙력된 대화의 방법, 곧 일련의 질문을 통해 여러 가지 전제들을 시험하고,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루어 나가는 방법을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지식을 얻으려면 먼저 자신의 무지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지를 인정하는 것은 지식의 목적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그것은 곧 배우기 위한 필수 조건이었다. 하지만 소피스트들과는 달리 소크라테스는 학습을 통해 참된 지식을 얻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소크라테스는 정확한 정의(定義)를 내리려고 애썼다. 이는 정확한 정의가 참된 지식과 올바른 의사 소통에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는 정의(正義)는 정확히 정의하기가 어려운 문제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소크라테스는 계몽주의 이전에 이미 분석적인 방법을 통해 사물들의 진정한 실체를 탐구했다. 겉으로 보이는 사물들의 모습이 모두 사라진다고 해도 모두를 포괄하는 보편적인 실체는 남는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장미꽃이 시든 후에도 미(美)는 여전히 남는다."


이처럼, 그는 구체적인 사물들을 관찰함으로써 보편적인 원리, 또는 실체를 추구했다.


소크라테스는 철학 때문에 순교했다. 도덕과 관습에 관한 그의 끝없는 질문에 싫증이 난 아테네 사람들은 그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는 귀족 가문의 젊은이들에게 사회, 종교, 정치적 관습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도록 부추겼다는 사실 때문에 위험한 인물로 간주되었다. 그러던 중, 소크라테스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알키비아데스가 아테네를 배신하고 스파르타 사람들에게 귀중한 군사 정보를 건네주었다. 그의 스승이었던 소크라테스가 의심을 받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으며, 아테네의 신들을 경배하지 않고, 이상한 종교적 관습을 조장했으며, 도시의 젊은이들을 망친다는 죄목으로 기소되었다. 기소자는 그를 사형에 처할 것을 요구했다. 소크라테스는 타협을 통해 목숨을 구하기보다는 독배를 마시는 길을 선택했다. 그의 최후는 플라톤의 파이돈에 기록되어 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에 대해 살펴본다.